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도(이영도)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06258
- 전몰일자 : 19520124
공훈사항
이영도 일병은 1929년 7월 22일 경상남도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23일, 부산에 있는 육군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2사단에 배치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계기로 9월 16일부터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미 제2사단도 9월 16일부터 반격작전에 참가했다. 사단은 9월 18일에 낙동강을 도하한 후, 9월 24일에 합천을 탈환하고 거창-전주-논산을 거쳐 9월 30일에 강경을 탈환했다. 이후 사단은 덕유산과 지리산 일대로 숨어 들어간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한편 북진을 계속하여 청천강 선까지 진출한 미 제8군은 10월 24일에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실시했으나, 적유령산맥 일대에 숨어 있던 대규모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미 제8군은 후방지역작전을 하고 있던 미 제9군단과 미 제2·제25사단을 청천강 선으로 북상시켜 전선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에 제2사단은 11월 15일 평안남도 개천 및 군우리 지역으로 이동, 유엔군의 제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에 참가하여 11월 24일 희천을 목표로 공격했다. 그러나 중공군 제40군단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후방이 차단되어 11월 27일에 군우리 일대로 철수했다. 사단은 군우리 일대에서 중공군 제40군단의 정면 공격과 제38군단의 측후방 공격을 받으면서, 12월 1일까지 군우리-순천 사이의 협곡지대인 일명 '태형의 계곡'을 통과하며 철수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미 제2사단은 38도선 이남으로 철수하여 충주 일대에 집결, 미 제8군의 예비임무를 수행했다. 사단은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 공세) 때 원주 전투, 중공군의 2월 공세 때 지평리 전투, 중공군의 5월 공세 때 벙커고지(800고지) 전투에서 적에게 출혈을 강요하며 공격을 저지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사단은 5월 24일부터 반격을 개시하여 5월 말에 인제를 점령하고, 6월 중순경에 강원 양구 북방의 펀치볼 일대를 확보했다. 사단은 피의능선 전투(8.18.~9.5.), 단장의능선 전투(9.13.~10.15.)에서 혈전 끝에 중공군을 물리치고 이 고지들을 점령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이러한 상황은 1952년까지 중순까지 계속되었다. 이 일병은 1952년 1월 24일 전투정찰 작전 중에 적과 조우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1면-2254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8-ㄲ-03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