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도(李永道)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2500772
- 전몰일자 : 19511017
공훈사항
이영도 이병은 1924년 10월 27일에 전라남도 순천군 매곡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일제의 패망과 광복에도 불구하고 정부수립 준비로 여전히 혼란스럽던 1948년 6월 1일, 충남 온양의 제13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제17연대가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투입될 때, 그는 제17연대로 전속되어 38선 경계 및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이영도 이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옹진반도에서 하루 정도 저지하다가 6월 26일 아침에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대전에서 육본경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보은-상주 일대에서 지연전을 수행했고, 8월 중순에는 포항지구전투사에 배속되어 기계-안강 지역에서 9월 12일까지 북한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격퇴했다.
제17연대는 영광스럽게도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정되어 9월 14일에 부산에서 상륙함정에 승선하여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 상륙했다. 이후 신사리로 기동하여 9월 25일에 한강을 건너 남산을 탈환한 후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취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주요시설 경비를 담당했다. 이후 제2사단이 11월 7일에 서울에서 재창설될 때, 제17연대는 사단에 예속되어 포천-철원-평강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을 실시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12월 하순에 압록강까지 북진했다가 다시 38선 일대로 철수할 때, 제2사단은 양문리-탑두울 지역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1950년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로 방어진지가 돌파되어 후방으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2월 초순에 제천, 단양을 거쳐 안동으로 이동하여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했다. 그리고 4월 28일에 청평 지역으로 이동하여 5월 16일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6월 15일에 육단리-적근산(캔사스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시작되었으나 진행이 지연되자, 유엔군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행동을 하도록 명령했다.
이영도 이병이 소속된 제2사단은 방어선 전방의 주요고지인 745고지를 두 차례에 걸쳐 공격하여 탈취했고, 김화 동쪽 송동으로부터 바조봉-적근산 서측 두목리에 이르는 일련의 능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그리고 사단은 김화-금성 진격작전계획에 의거 10월 13일부터 공격을 개시했다. 연대는 사단의 주공으로서 전차중대를 배속받아 금성을 목표로 진격했다. 그는 10월 17일 하풍동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도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1면-2255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9-ㅊ-08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