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도(李英道)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2842
- 전몰일자 : 19511110
공훈사항
이영도 일병은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現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3일 제5사단에 현지 입대하여 제15연대에서 복무했다. 제5사단은 2개 연대로 6·25전쟁 초기전투에 참전하여 많은 손실을 입고 1950년 7월 5일 해체되었다. 이영도 일병은 제5사단이 해체되면서 제1사단에 배치되어 임무를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의 전황은 국군이 금강방어선으로 지연전을 펼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어서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8월 공세에 이어 9월 공세를 펼쳤지만 결국 마산-대구-포항 선의 아군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실패했다.
그 후 제5사단이 10월 8일 대구에서 제27, 35, 36연대 등 3개 연대와 수색대, 공병대, 통신대 등을 예하부대로 하여 재창설되면서 이영도 일병은 사단 통신대로 재배치되었다. 이영도 일병이 부대에 재배치될 당시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재창설 후 10월 13일부터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사단은 11월 22일까지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하면서 6명의 병력을 잃었으나, 그 대신 적 936명을 사살하고 126명을 생포하는 등의 전과를 올리면서 후방지역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후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자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사단은 춘천-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1951년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이어서 사단은 태기산 전투(3월), 인제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이로써 중공군 5월 공세 때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8월에 접어들면서 美 제10군단의 강원도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 시, 군단에 배속된 사단은 가칠봉 전투에서 9월 4일부터 10월 14일까지 5,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혈전을 벌인 끝에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냈다. 사단은 이 전선을 10월 20일부로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1952년 1월 12일까지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하면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했다. 이영도 일병은 양양 지역에서 예하부대와 통신망 확립을 위해 통신망을 점검하다가 1951년 11월 10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도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7판-3면-27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4-ㅈ-027)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