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동(이영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77526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영동 일병은 경상북도 경산군 안심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1차 총공세를 했으나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청천강으로 철수하던 1950년 10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이영동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었던 12월 19일, 제2사단은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가 부대로 전입하기 전, 사단은 포천, 평강, 구화리 일대에서 미처 도망가지 못한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하는 후방지역작전을 했다. 당시 미처 도망가지 못한 북한군 패잔병들이 포천, 평강, 구화리 일대에서 유엔군의 병참선 차단 등 적극적인 후방지역 교란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군 패잔병들은 일반적인 공비수준을 넘어서는 중대 및 대대 규모로 지휘체계를 유지하여 유엔군의 병참선 경비부대를 공격하여 수송체계를 교란할 뿐만 아니라 보급소 및 탄약고 등 주요시설을 공격하였다. 한편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38선으로 철수하게 되자, 제2사단은 수색작전을 멈추고 12월 8일에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영동 일병이 소속된 사단 통신소대는 사단과 연대 간의 통신소통 유지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던 중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시작하여 서울을 공격했다. 적은 아군의 후방을 차단하며 포위 섬멸하고자 했다. 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를 사수하며 적의 공세를 저지하고자 했으나 하룻밤을 버티지 못하고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진지에서 이탈하여 청평으로 철수했다. 이영동 일병이 소속된 통신소대는 빗발치는 포격 중에 통신망 유지를 위해 전장을 누비다가 적 침투조의 공격을 받고 즉각 대응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동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1면-2255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1-ㅌ-06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