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동(李永東)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756062
  • 전몰일자 : 19530617

공훈사항

이영동 하사는 경상북도 김천시 지좌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1년 10월 30일, 강원도 서화에 주둔한 제8사단으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로 배치되었다.
이영동 하사가 부대로 배치되었던 1952년 11월 중순, 제8사단은 3차례에 걸친 노전평전투(8월 9일~9월 18일)에서 해안분지(일명 펀치볼) 주변의 고지(노전평 부근, 1031고지 및 965고지)를 탈취하고 방어진지를 강화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미 제1해병사단에 방어진지를 인계하고 전주로 이동하여 호남지구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1952년 1월 31일까지 공비토별작전을 완료하고 서울 북방의 퇴계원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를 실시한 후 3월 23일에 다시 전방으로 투입되어 강원도 서화 북쪽의 노전평 부근 854고지-812고지를 담당한 미 해병 1사단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제8사단은 10월 19일부로 국군 제2군단으로 배속되어 수도사단으로부터 교암산∼어운리를 잇는 방어진지를 인수하여 이영동 하사가 소속된 제21연대를 어운리에 배치하고, 제16연대를 교암산에, 제10연대를 예비로 광대동에 위치시켰다. 사단은 수도고지(621고지), 지형능선, 271고지를 전초로 운용했다. 이후 전선은 한동안 조용했으나, 1953년이 되자 중공군 제201사단이 5월 13일부터 18일까지 전초진지인 271고지 및 돌바위 고지를 공격하여 탈취했다. 그리고 5월 27일부터 6월 12일까지 수도고지 및 지형능선을 탈취하기 위해 공격했다.
이에 이영동 하사가 소속된 제21연대와 제10연대가 교대로 투입되어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했다. 이후에도 적들은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을 탈취하기 위해 수시로 공격했는데, 그때마다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어 인명피해도 컸다. 그러던 중 적들은 6월 17일에도 아군의 전초진지에 대해 공격했다. 이날 전투는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어 인명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졌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동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65-ㅊ-03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