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동(李永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401239
  • 전몰일자 : 19500924

공훈사항

이영동 일병은 1933년 8월 5일 경상북도 경산군 안심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던 1950년 9월 4일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직할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사단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은 뒤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일병 역시 간단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이영동 일병이 소속된 제1연대는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낙동강 방어선에서 치열한 방어전을 벌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북한군의 9월 공세 일환으로 적 제12사단이 비학산 일대에서 공격해오자, 9월 4일 안강을 포기하고 경주북방에 있는 낙산(호명리)으로 철수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후 제1연대는 안강 북쪽고지 일대로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였으나, 미처 진지도 편성하기 전에 적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아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포병과 공군기의 지원으로 고지를 재탈환하였다. 이후 이영동 일병이 소속된 연대병력은 9월 15일 안강평야와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안강 남쪽에 배치되어 경주 방향으로 돌파하려는 적 제12사단과 제5사단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영동 일병은 1950년 9월 24일 춘양 부근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동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4판-1면-23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2-ㄹ-08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