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두(李永斗)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6801671
  • 전몰일자 : 19500827

공훈사항

이영두 일병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상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하던 시기에, 조국과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7월 10일 제3사단 제22연대에 입대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제3사단은 흥해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연대는 7월 초에 한강방어선전투에 참가했다가 조치원-청주-보은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동해안 축선의 위협이 증가됨에 따라 연대는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57호(7.20. 발령)에 의거 제3사단으로 원대 복귀했고, 23일 대구로 이동하여 재편성을 했다. 7월 24일 영덕 남방의 강구에 도착한 연대는 제3사단의 역습명령에 따라 강구 북방의 181고지와 207고지를 공격하여 탈취하고, 곧이어 30일 제23연대가 탈취당한 영덕을 다시 탈환했다. 영덕을 사이에 두고 적과 백병전이 거듭되는 공방전을 펼친 끝에 연대는 8월 2일 마침내 영덕을 탈환하고 3일 활인산-매정동 선을 확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8월 5일 적의 야습을 받아 영덕을 탈취당하고, 연대는 오십천 남방 고지를 점령하여 8월 9일까지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8월 11일 북한군 제12사단 일부 병력이 포항을 점령함에 따라 사단의 후방이 차단되어 고립되었다. 북한군 제5사단은 연대를 강력히 압박했고, 연대는 장사동 일대로 철수하여 8월 16일까지 적의 공격을 저지하다 8월 17일 해상으로 철수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병력을 재보충받은 연대는 8월 21일 공격을 개시하여 흥해 남쪽 고지 일대까지 진출 후, 23일 방어로 전환했다. 이 일대에서 연대 장병들은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적과 일진일퇴의 치열한 교전을 벌이면서 9월 1일까지 진지를 지켜냈다. 일련의 전투에서 이 일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8월 27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두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5판-6면-20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4-ㅊ-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