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두(李永斗)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9256357
  • 전몰일자 : 19530617

공훈사항

이영두 이등중사는 1930년 5월 5일에 경상남도 의령군 낙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간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11월 11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8사단 제10연대로 배치되었다.
이영두 이등중사가 부대로 배치되었던 1953년 1월 중순, 제8사단은 강원도의 교암산∼어운리를 잇는 방어진지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 사단은 1952년 9월 21일에 사단의 전초진지에 대해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치열한 전투로 격퇴하고자 했으나 결국은 빼앗겼다. 이에 그가 소속된 제10연대가 9월 22일 아침에 근접항공 지원과 동해안의 함포사격을 지원받으며 역습하여 854고지 전방의 전초진지를 완전히 탈환했다.
이후 제8사단은 9월 28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사창리로 이동하였고, 다시 10월 19일부로 국군 제2군단으로 배속되어 수도사단의 교암산∼어운리를 잇는 방어진지를 인수하여 제16연대를 교암산에, 제21연대를 어운리에 배치하고, 제10연대를 예비로 광대동에 위치시켰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으나 수시로 아군의 전초기지를 탈취하기 위한 적의 도발이 있었다.
이영두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8사단은 1953년 1월 1일부터 12일까지 제21연대 방어진지 전방의 전초진지인 수도고지(621고지)에 대한 적의 공격을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했다. 이후 중공군 제201사단이 5월 13일부터 18일까지 북한강 서안에 위치한 전초진지(271고지)를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탈취했고, 이에 사단의 예비로 있던 제10연대가 이를 탈환하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치열한 공방전을 실시했으나 결국은 탈환하는 데 실패했다. 또한 중공군은 5월 27일부터 6월 12일까지 아군의 전초진지인 수도고지 및 지형능선을 탈취하기 위해 공격했으나, 제10연대와 제21연대가 교대로 투입되어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이후에도 적 침투부대가 6월 17일에 공격했는데, 그가 소속된 중대는 즉각적인 반격으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두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4판-6면-11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65-ㅋ-03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