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두(李永斗)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2501057
- 전몰일자 : 19510826
공훈사항
이영두 이등상사는 1919년 8월 1일에 출생하였다(출생지 미상) 그는 일제의 패망과 광복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혼란하던 1948년 6월 8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영두 이등상사가 소속된 사단은 북한군의 기습남침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긴급 참전한 유엔군의 지원으로 낙동강까지 철수한 후 8월 포항으로부터 안동-영천-신령-칠곡-현풍-창녕-마산을 잇는 200㎞ 길이의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 이등상사와 연대병력은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 편성에 주력하였으며 9월 14일에는 가산성 가장자리까지 진출하였다. 제1사단은 10월 9일 38도선을 돌파하였으며 임진강-토산-신계-수안-상원 방향으로 진격을 계속하였다. 이후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는 중과부적이었다. 사단은 서울을 포기하고 평택까지 철수하였다.
이영두 이등상사와 연대병력은 1951년 1월 말 반격을 시작하여 수원과 관악산을 거쳐 2월 10일 한강 남쪽에 도달하였고, 16일에는 한강 남쪽으로 진출하였다. 이후 3월 15일에는 한강을 도하 하여 시내로 진출함으로써 서울을 탈환하는 수훈을 세웠으며, 4월에는 다시 임진강까지 진출하였다. 이어 4월 21일 임진강 북쪽의 대덕산-백학산-강정리를 연하는 선에서 정찰 활동에 주력하면서 오금리-마지리 간 주저항선의 방어진지도 강화하였다.
7월에 접어들어 이 이등상사와 연대 장병들은 자체 정찰 활동과 적군의 주요 지역에 대한 탐색 활동을 강화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심한 장마로 인하여 기상이 악화되고 도로가 침수되어 부대기동이 어려웠고 포병사격의 유도는 물론 항폭지원 역시 곤란하였다. 이로 인해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언제나 앞장서서 용맹을 발휘했다. 이영두 이등상사는 1951년 8월 26일 석주원리에서 부대원들과 함께 정찰 활동을 하던 도중 매복해 있던 적의 기습사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두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3면-33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4-ㅌ-00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