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득(李永得)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78279
- 전몰일자 : 19511019
공훈사항
이영득 하사는 경기도 연백군 도촌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한 후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실시했던 1950년 10월 30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영득 하사가 부대로 배치되었던 1951년 12월 중순, 국군과 유엔군은 대규모 중공군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선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당시 제6사단은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에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실시했고, 유엔군은 평택-삼척 선으로 철수했다. 그리고 제6사단은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 일대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유엔군은 2월 12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와 4월 22일 시작된 4월 공세로 반격과 후퇴를 반복했다. 제6사단은 사창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4월 공세로 용문산 일대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사단은 제7·제19연대를 용문산 주방어진에 배치하고, 제2연대는 홍천강 남쪽에 추진하여 전초진지로 운용하였다. 이곳에서 사단은 중공군의 5월 공세를 물리치고, 1951년 5월 20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했다. 5월 24일에는 계관산-북배산 방향으로 공격하여 28일에는 화천을 점령하고, 6월 15일에는 백암산까지 점령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군사력을 증강하자, 유엔군사령관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전방지역에 대해 공세작전을 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이영득 하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백암산 전방에 위치한 등대리 부근의 819고지-462고지를 두 차례 공격하여 9월 28일에 탈취했다. 그리고 제6사단은 10월 13일에 금성천 부근을 공격하였는데, 제2연대는 사단의 예비로 후속하다가 10월 16일에 전방연대를 초월하여 중공군을 격파하고, 교암산(770고지) 방향으로 공격했다. 그는 10월 19일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득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35365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45묘역-12판-1140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ㅈ-06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