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래(李永來)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264657
  • 전몰일자 : 19530425

공훈사항

이영래 일병은 1931년 12월 5일 전라북도 임실군 점사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52년 2월 28일에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육군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2사단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국군과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공산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 제2사단은 미 제9군단 예비로서 전방지역 투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단은 1952년 7월 17일부로 미 제1군단으로 배속되어 미 제45사단으로부터 경기도 연천군의 덕은동-281고지 일대의 역곡천 남쪽 주진지와 전초진지를 인수했다. 이후 여름 내내 소규모 전투가 계속되었다.
미 제2사단이 진지를 인수하기 전에 미 제45사단은 6월 6일부터 군단의 소위 ‘카운터 작전’에 의해 중공군이 점령하고 있던 14개의 전초진지를 탈취했다. 이 고지들이 후에 ‘불모고지(Old Baldy)’, ‘포크찹고지(Porkchop Hill)’라고 명명되었다. 이후 미 제45사단은 6월 말까지 20차례가 넘는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이후에도 이를 되찾으려는 중공군의 역습은 끊이지 않았다. 7월 초 며칠간의 소강상태를 보이던 이 지역의 전투는 7월 중순에 다시 격화되었다.
미 제2사단이 미 제45사단으로부터 작전지역을 인수하던 날인 7월 17일에 중공군으로부터 강렬한 역습을 받았다. 따라서 사단의 전초진지인 불모고지(266고지)-포크찹고지(255고지)-에리고지(191고지)에서는 매일 공방전이 되풀이되었다. 사단은 9월 18일에 다시 전초진지를 중공군에게 빼앗겼으나, 즉각적인 역습으로 20일에 재탈환했다. 중공군은 후퇴한 후에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1953년이 되면서 전선의 소강상태는 계속되었고 사단은 진지를 보강하면서 전투정찰, 수색 및 매복 작전 등을 지속했다. 그러다 3월 3일 중공군이 사단의 전초진지인 사미천 부근의 후크고지를 공격했고, 치열한 공방전이 3월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 일병은 미군 장병들과 함께 후크고지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4월 25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1-ㅎ-012)에 그의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