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래(李永來)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22079
  • 전몰일자 : 19520802

공훈사항

이영래 일병은 1931년 11월 12일에 경상남도 사천군(現 사천시) 곤명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1월 20일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영래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북진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38도선 일대로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춘천-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1951년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고,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8월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가칠봉 전투에서 8월 31일 공격을 개시하여 9월 4일에 제27연대를 주력으로 사단목표인 가칠봉 동북쪽 능선과 서희령을 점령했다. 이어서 사단은 9월 5일부터 10월 9일까지 세 번씩이나 감제고지인 1,211고지를 점령 및 상실을 거듭하다가, 10월 14일에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확보하고 가칠봉 전투를 종결했다. 그 후 사단은 이 전선을 10월 20일에 국군 제3사단에 인계 후, 육본 직할로 전환되어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제5사단은 1952년 1월 13일부로 제1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월 23일부터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고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9사단으로서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사단은 제36연대를 좌측 전방, 제35연대를 우측 전방에 배치하고 이영래 일병이 소속된 제27연대는 예비로 강원도 간성 수동리 일대에 집결했다.
마침내 적 제9사단은 7월 10일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했다. 적의 기습공격에 사단은 고지를 탈취당했으나, 제27, 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고지를 탈환했다. 이후 적은 11월까지 수시로 소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이 고지를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이영래 일병은 1952년 8월 2일 351고지에서 분대원과 함께 소대 규모의 적과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전사자 명부에 홍천에서 전사는 오류로 추정)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래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위하여 그의 위패(06판-3면-22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4-ㄴ-078)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