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렬(李永烈)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76446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이영렬 이등중사는 1931년 4월 29일에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간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1년 12월 21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3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영렬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2년 2월 중순, 제2사단은 육단리-적근산 방어진지에서 전방으로 추진하여 522고지-477고지-하진현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이후 3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배속 해제되어 사창리로 이동하여 야외기동훈련으로 전기전술을 숙달했다. 그리고 1952년 6월 1일에 김화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 진지를 인수하여 남대천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당시 유엔군은 휴전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공세적인 행동을 하기로 했다. 이에 제2사단은 상급부대 작전지침에 따라 10월 14일에 김화 북쪽의 저격능선을 공격했다. 먼저 제17연대가 3차에 걸친 공격 끝에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이후 제17 및 제32연대는 교대로 저격능선을 방어했다. 중공군은 저격능선을 다시 뺏기 위해 수시로 공격했다. 이러한 전투는 11월 24일까지 계속되었으며, 결국은 저격능선을 사수했다.
제2사단은 12월 1일부로 다시 군단 예비로 전환되면서 사창리로 이동하여 야외기동훈련(FTC훈련)을 실시했고, 12월 30일에 철원 고대산 전방의 독서당리, 하진명동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3사단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이영렬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32연대는 사단의 좌측연대로서 하진명동 일대에 방어배치 되었다. 이후 사단은 몇 번의 부대교대를 거쳐 1953년 여름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281고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중공군 제23군 예하의 제73사단은 휴전협상이 조인될 전망이 보이자 6월 29일에 아군의 전초기지인 화살머리고지(281고지)에 대해 공격을 감행하여 탈취했다. 제31연대는 최초 방어에 실패하여 적에게 화살머리고지를 빼앗겼으나, 다음날인 30일에 제17연대의 즉각적인 역습으로 화살머리고지를 재탈환했다.
이영렬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32연대는 제17연대로부터 화살머리고지를 인수하여 확보하고 있었는데, 중공군들이 7월 6일에 다시 화살머리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이 전투는 이후 7월 11일까지 5일간에 걸쳐 뺏고 빼앗기는 격전이 계속되었으나, 끝까지 화살머리고지를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가끔은 포격전이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7월 16일에 적의 포사격에 의해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렬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21-ㄴ-09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