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렬(이영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707504
- 전몰일자 : 19501030
공훈사항
이영렬 일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계급과 군번, 그리고 소속부대 등을 고려하여 작성했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준비를 하던 1950년 9월 11일, 제7연대로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6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이영렬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9월 중순, 제6사단은 신령 북방의 방어진지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부터 낙동강 선에서부터 총반격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제6사단은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하여 9월 30일에 충주를 탈환하고, 10월 5일에는 모진교 방향에서 38선을 돌파했다. 계속 화천을 거쳐 김화–신고산–성천 방향으로 진격하여 17일에 양덕을, 19일에 성천-순천을, 23일에는 희천을 점령했다. 사단은 이곳에서 유엔군사령부의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준비했다. 이영렬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반격 및 북진작전 간에 제7연대의 선두에서 장애물 개척 임무를 수행하여 연대의 진격 속도를 높였다.
제7연대는 10월 24일에 희천에서 압록강변의 초산 방향으로 공격했다. 장병들은 통일을 눈앞에 둔 벅찬 가슴을 억누르며 계속 진격하여 10월 26일에 초산읍내를 점령하였고, 오후에는 바로 국경선 경비임무에 돌입했다. 이때 중공군은 10월 19일에 은밀히 압록강을 건너 적유령 산맥 일대에 대기하다가 10월 26일에 국군과 유엔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이에 제7연대는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 포위망을 돌파하며 험준한 산길을 통해 후방으로 철수를 감행했다.
이영렬 일병은 압록강을 향해 진격할 때 장애물 개척 임무를 수행하며 공격을 선도했으나, 중공군에게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는 포위망 돌파가 급선무였다. 그는 공병소대원들과 함께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하다가 10월 30일에 적의 총탄에 가슴을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1면-2255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5-ㄴ-09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