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령(이영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9265
- 전몰일자 : 19520801
공훈사항
이영령 일병은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및 세부 출생 지역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하던, 1950년 11월 5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본 직할부대로 배치되었다.
이영령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당시 국군과 유엔군 주력은 1950년 11월 24일에 총공세를 펼쳤으나, 그때마다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후방이 차단당하여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영령 일병이 소속된 부대는 제5경비대대로서 12월 8일 창설되어 서울 인근에 주둔하면서 적 게릴라 소탕 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북한군 패잔병들은 유엔군의 주요 병참선이 지나가는 철원-김화-평강 일대에서 게릴라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했고, 또한 서울 인근에서 주요시설을 습격하고 유엔군 병참선을 위협하고 있었다. 육군직할 경비부대는 서울 인근에서 이러한 적 게릴라 소탕 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1950년 12월 31일 야간 대규모 중공군이 주력을 서울을 향해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펼쳤고, 이에 보조를 맞춰 적 게릴라들은 더욱 후방교란 활동에 적극성을 띠었다. 이에 정부와 육군본부는 다시 부산으로 이전하였고, 경비대대는 육군본부가 이전한 후에도 서울에 남아 적 게릴라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그러던 중 경비대대는 1951년 1월 5일 새벽에 아군 주력부대가 서울에서 완전히 철수한 것을 확인한 후에 철수했다.
그 후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공세를 평택-삼척을 잇는 선에서 저지하고 반격작전을 실시하면서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영령 일병의 제5경비대대는 당시 육군본부가 위치한 대구에서 경비임무를 수행하며 적 게릴라 소탕 작전을 병행하여 실시했다. 적 게릴라 부대는 전국 곳곳에서 후방교란작전을 실시했으며, 특히 육군본부가 위치한 대구 부근에서 극성을 부렸다. 이영령 일병은 1952년 7월 30일 대구 인근에 나타난 적 게릴라 소탕 작전 중 분대원과 함께 적을 추격하다가, 은거해 있던 적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령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5판-7면-02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6-ㄴ-111)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