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록(이영록)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2804766
  • 전몰일자 : 19501029

공훈사항

이영록 일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계급과 군번, 그리고 소속부대 등을 고려하여 작성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3일만에 적에게 서울을 빼앗기던 1950년 6월 28일, 대전의 육본에서 경비 임무를 하던 제17연대로 현지 입대하여 바로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영록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7월 1일에 오산 갈곶리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했다가 북한군의 공격으로 철수하여 보은-상주 지역으로 이동했고, 8월 초에 대구로 이동하여 육군의 예비가 되었다. 이후 연대는 8월 9일부로 포항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어 기계-안강 지역에 투입되었다. 이곳에서 연대는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적의 진출을 저지하고 있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제5사단과 합세하여 경주를 점령하기 위해 안강 지역을 탈환했다. 연대 장병들은 안강 지역을 적에게 내어주고 곤계봉-호명리 선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연대 장병들은 9월 13일까지 사수했다. 이 지역이 뚫리면 적들은 바로 경주를 점령하고, 부산으로 직행하여 전쟁을 끝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연대는 안강 지역의 최대 격전지였던 곤계봉을 한때 적에게 피탈되기도 했으나, 치열한 전투를 치른 끝에 탈환했다. 그 결과 제17연대는 안강 이남의 주저항선을 회복하고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
제17연대는 영광스럽게도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발되어 9월 14일에 부산항을 출발한 후, 9월 18일에 인천으로 미 제1해병사단에 후속하여 상륙했다. 제17연대는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열차로 영등포까지 이동한 후 하차하여 신사리까지 도보로 기동하였다. 이어 9월 25일 오후 2시에 신사리에서 서빙고로 한강을 도하했다.
이영록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즉시 남산으로 진격하여 미미한 적의 저항을 물리치면서 동쪽 능선과 보광동 일대로 진격하여 매봉(174고지)과 무학여고가 내려다보이는 고지 일대까지 진출했다. 다음날은 망우리ᐨ면목동 일대에 진출하여 퇴각하는 적의 전차 10대를 노획했다. 그리고 9월 28일 잔적을 소탕하며 서울 중심지로 입성하여 밤 12시를 기하여 중앙청 및 경무대 경비 임무를 해병대로부터 인수했다.
한편 국군이 10월 1일을 기점으로 38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감행할 때, 제17연대는 서울에서 주요시설에 대한 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이영록 일병이 소속된 대대는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후방지역을 교란하던 북한군 잔적들을 소탕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는 10월 29일에 서울 시내에서 잔적소탕 작전을 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1면-2255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1-ㅌ-03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