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록(李永錄)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20228
  • 전몰일자 : 19521008

공훈사항

이영록 하사는 경상남도 통영군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을 하고 있는 시기에, 조국통일의 선봉에 서고자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0년 10월 26일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30연대에 배치되었다.
제9사단은 10월 25일 제28·29·30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서울에서 창설되었고, 제30연대는 충북 청주에서 창설되었다. 연대는 1950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경북 상주, 문경지구에 투입되어 공비들을 소탕했다. 사단은 12월 19일부로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신정 공세) 때 연대는 1951년 1월 3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이다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하여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이 일대에서 중공군 2월 공세를 격퇴하고, 3월 5일 제1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4월 들어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작전을 개시했고, 제30연대는 매봉, 한석산 일대까지 진격했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연대는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제9사단은 5월 29일부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포천으로 이동했다. 연대는 6월 5일부터 28일까지 철의 삼각지 확보에 중요한 감제지형인 보개산 및 북대산 전투, 김화읍 계웅산 전투에 투입되어 중공군 제165사단과 격전 끝에 동 고지들을 확보했다. 사단은 10월 17일 미 제3사단 진지를 인수하여 철원 서북방의 요충지인 281고지(화살머리고지)와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에서 중공군 제126사단과 공방전을 펼쳤다.
1952년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전선에 투입됨에 따라 전선이 조정되어, 사단은 동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 제38군 예하 제114·112사단과 12차례의 백병전이 거듭되는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사단은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끎으로써, 한국군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철의 삼각지 서남부에서 전술적 우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끝까지 진지를 지켜내다 적탄에 맞아 10월 8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록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6판-3면-04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9-ㅎ-03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