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룡(이영룡)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7901942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영룡 하사는 서울특별시 성동구 금호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철수하여 낙동강방어선을 형성하던 1950년 8월 1일, 경북 의성의 제8사단으로 현지에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8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수색대는 항상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사단에 보고하거나, 직접 적 지휘소 또는 보급소를 습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제8사단은 안동-의성-영천 축선에서 지연전을 하며 철수하여 영천 북방의 고지군에 최후 방어선을 설치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북한군의 8월 및 9월 총공세를 격퇴하고, 9월 16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했다. 사단 장병들은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하여 10월 2일에 원주를 탈환하고, 10월 8일에 동두천 북방에서 38선을 돌파했다. 그리고 10월 18일에 강동을 점령하고, 북창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23일에 덕천을 점령했다.
유엔군은 1950년 10월 24일에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시작했다. 당시 제8사단은 선두부대가 10월 26일에 희천에 도착했을 때,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후방이 차단되어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덕천으로 이동하여 비호산을 방어하고 있던 제7사단 동측을 방호했다. 그리고 유엔군은 압록강을 향해 1950년 11월 24일에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했으나, 이번에도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후방이 차단되었다. 당시 제8사단은 묘향산 동측방의 영원과 맹산 지역에서 중공군 제42군단의 공격을 11월 27일까지 치열한 전투로 저지하고, 이날 북창과 가창으로 철수했다. 이영룡 하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 후방 교란 작전을 펼쳤다.
제8사단은 삼등-율리-수안-신계-시변리를 거쳐 12월 5일 토산까지 철수하여 부대를 정비한 후, 국군 제3군단에 배속되어 화천저수지 남쪽의 경운산-추전리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했다. 예측대로 공산군은 1950년 12월 31일에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개시하여 38선을 돌파하고, 주공을 서울로 향했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전방으로부터의 압력과 측후방의 위협으로 1951년 1월 1일 야간에 38선 일대의 방어진지에서 일제히 철수했고, 제8사단은 적의 공격이 경미하였으나, 좌우인접 사단이 철수하면서 고립될 상황에 직면하여 홍천으로 철수했다. 한편 이영룡 하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에서 활동 중 적 지휘소를 발견하고 습격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룡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5면-905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ㄱ-06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