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만(李榮萬)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810
공훈사항
이영만 순경은 1927년 7월 2일 충남 아산읍 영인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서울시경 중부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대전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에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할 것과, 전투경찰대를 편성하여 대처하도록 지시한 후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당시 서울에는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제3·제8·제18연대와 독립 기갑연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6월 26일 의정부가 점령되어 서울이 위협을 받게 되자 서울시 비상경비사령부 산하 경찰병력 7,105명이 서울 방어를 위해 군경합동작전에 참가하여 서울 외곽에 배치되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자 한수 이남으로 후퇴한 국군은 한강방어선을 형성했다. 6월 30일 1개 대대규모의 적이 오류동을 목표로 공격을 하자 7월 1일까지 피·아 간 전투가 벌어져 적을 격퇴했으나 7월 3일 전차 17대를 앞세운 적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영등포를 비롯한 오류동의 방어선이 무너지게 되었다. 이에 경찰 각 부대는 7월 3일 수원으로 철수했다.
비상경비총사령부는 아군이 지연전을 전개하여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기까지 경찰병력으로 하여금 오열 색출, 주보급로 경비, 철도 경비, 치안유지, 국군이 배치되지 않은 지역에 투입되어 경계 및 방어작전을 수행하도록 했다. 이에 7월 3일 서울경찰 병력 중 1,000명은 지리산에 투입하도록 결정되었고, 500명은 7월 4일 천안지구를 경비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북한군이 계속 남진함에 따라 7월 11일 비상경비총사령부는 충남경찰 300명과 서울경찰 200명(이 순경 포함)으로 제1대대, 경기경찰 300명과 혼성병력 200명으로 제2대대를 편성한 뒤 제1대대는 청양에, 제2대대는 홍산에 배치하여 군의 작전에 협력, 청양-대천 선에서 적을 하도록 했다.
7월 12일 공주를 점령한 북한군 제4사단은 일부 병력을 강경과 논산으로 우회시켜 대전 공략을 시도했다. 치열한 공방전 속에 7월 20일 대전이 함락되면서 일부 경찰병력은 후방으로 후퇴했고, 이 순경이 포함된 일부 서울경찰 병력은 대전에 남아 게릴라전으로 적에게 타격을 가하며 적의 동향을 파악했다.
8월 10일, 이 순경은 대전에서 적 부대를 공격하던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만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4-ㅊ-04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