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만(이영만)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03561
  • 전몰일자 : 19501022

공훈사항

이영만 일병은 1926년 8월 18일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19일, 부산에 있는 육군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카투사(KATUSA) 병으로 차출되어 미 제1기병사단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미 제1기병사단은 왜관-현풍 간 낙동강방어선을 점령하고 북한군 제3·제10·제15사단의 대구 방향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8월 31일 야간부터 대대적인 9월 공세를 실시했다. 사단 장병들은 격렬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격퇴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싸웠다. 유엔군 공군과 포병 화력지원을 받아 북한군을 낙동강 서쪽으로 격퇴하기 위해 싸웠고, 결국은 성공했다. 북한군은 9월 12일 이후에는 공격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방어로 전환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부터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사단 정면의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된 것을 아직 모르고 낙동강 선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완강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9월 20일부터 북한군은 진지를 이탈하여 퇴각하기 시작했고, 사단은 도망가는 적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 일병과 사단 장병들은 낙동리에서 낙동강을 건너 상주-청주-천안 방향으로 추격하여 27일에 오산 북방에서 인천상륙작전부대인 미 제7사단 제31연대 장병들과 합류했다.
미 제1기병사단은 상주~수원 일대에서 북한군 패잔병들을 소탕하다가 10월 5일부터 38도선 이북 북진작전을 위해 문산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10월 8일에 임진강을 도하하여 개성-금천-사리원-평양 방향으로 추격했다. 사단은 10월 13일 황해도 사리원을 공격하여 탈취한 후 계속 공격하여 10월 19일 평양을 점령했다. 이후 사단은 미 제8군의 예비로서 평양에 머무르며 부대정비에 집중했다. 이 일병은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웠으나, 10월 22일 평양에서 적 패잔병의 습격을 받고 교전하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만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1면-2255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7-ㅎ-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