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만(李永萬)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5704453
  • 전몰일자 : 19510831

공훈사항

이영만 이병은 경상남도 진양군 집현면에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자유를 수호하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8월 9일 용산에 있는 제2포병훈련학교에 입대하여 포병 주특기 교육을 받고, 육군직할 포병연대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6·25전쟁 이전에 발발한 38도선 상에서의 산발적인 교전에 참가하여 적을 격멸하는 데 기여했다. 포병연대는 동년 10월 15일 육군포병학교로 개칭되었고, 이영만 이병은 조교로 보직되어 확장되는 포병부대원 교육에 전념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포병학교 포병대대는 의정부와 창동 전선에 투입되어 적 전차를 직접 조준사격으로 파괴하는 전과를 획득하기도 했으나, 전방 사단들의 철수와 함께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재정비를 했다. 초기전투에서 많은 부대들이 극심한 피해를 입자 육군본부는 1950년 7월 5일 사단을 재편했다. 이때 포병도 기존의 제1·3·5·6·7포병대대를 해체하여 제1포병단을 창설하고, 예하에 제10·11·16·17·18·50포병대대를 창설했다. 이때 이영만 이병은 제1포병단으로 전속되었으며 포병단은 9월 10일 포병교육대로 개편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 및 북진작전으로, 미처 북으로 도주하지 못한 북한군 패잔병들은 산악지대로 숨어들어 지방 좌익 빨치산 세력들과 연계하여 유엔군 후방지역을 교란했다. 이들은 후방의 지원 시설이나 군사학교를 습격하기도 하고, 전방으로 투입되는 보급물자들을 습격하여 파괴하거나 탈취하기도 했다. 당시 포병교육대가 위치한 경상남도 진해는 군사학교와 후방지원 시설들이 위치해 있어 적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적 게릴라들이 출몰했을 때 포병교육대에서도 출동하여 소탕작전을 펼치곤 했는데, 교육대는 조교를 비롯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게릴라들 공격에 대응해 왔다. 이후 포병교육대는 1951년 3월 10일부로 육군포병학교로 다시 개편되었다.
이영만 이병은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기동타격대로 편성되었을 때는 이들 게릴라 소탕작전에 앞장서 왔다. 이영만 이병은 복무기간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1951년 8월 31일 적 게릴라들이 포병학교를 습격하여 기동타격대 격멸조원들과 함께 도주하는 게릴라들과 교전하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만 이병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7620 국 / 134614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3판-41면-2256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ㅁ-032)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