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만(이영만)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K1112821
  • 전몰일자 : 19510122

공훈사항

이영만 이병은 1931년 1월 5일에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16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영만 이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10월 초, 제17연대는 서울에서 경무대와 중앙청 등 주요시설에 대한 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한편 국군과 유엔군은 10월 총에 38선을 돌파하여 북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국군 제2사단은 지연전 시에 함창에서 해체되었다가 11월 7일에 서울에서 재창설되었고, 예하 부대에 제17, 31, 32연대와 포병대대로 편성했다. 제2사단은 11월 말이 되면서 포천, 평강 지역으로 출동하여 교란 및 파괴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들을 소탕하는 작전을 수행했다. 당시 북한군 패잔병은 단순한 게릴라 수준을 넘어 정규군과 유사한 규모로 편성되어 아군에게 위협적이었다.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다시 38선으로 철수할 때, 제2사단은 38선 상의 양문리-탑두울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였다. 이곳에서 사단은 1950년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방어진지가 돌파되어 후방으로 철수했다. 다행히 중공군은 서울을 점령한 후 보급문제 등으로 더는 공격하지 못하고, 이에 유엔군은 평택-원주-삼척을 연하는 선에서 방어선을 갖추었다. 당시 제2사단은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여주로 집결, 다시 제천으로 이동했다가 1월 중순에 안동지역으로 이동했다. 당시 태백산맥의 일월산-보현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10사단의 교란 및 차단 활동으로 후방이 매우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북한군 제10사단은 유엔군이 북진할 때 미처 도망가지 못한 패잔병들로서 중공군 공세에 맞추어 태백산맥 일대를 거점으로 후방 교란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었다.
이영만 이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후방지역의 안정을 위해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의 적 패잔병 소탕작전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중대는 1월 18일에 영양 북쪽의 일월산 지역에서 수색작전 중 북한군 패잔병을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울산에 위치한 제23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만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7묘역-9판-1015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8-ㄲ-07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