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만(이영만)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14988
- 전몰일자 : 19511207
공훈사항
이영만 일병은 1922년 5월 9일에 경상북도 경주군(現 경주시) 내동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작전으로 전환하고 있던 1950년 9월 25일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이영만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 재창설 후 10월 13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 토벌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후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자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사단은 춘천-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1951년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이어서 사단은 태기산 전투(3월), 인제부근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했다. 이로써 사단은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8월에 접어들어 美 제10군단은 南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北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강원도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이영만 일병이 소속된 제5사단은 가칠봉 전투에서 9월 5일부터 10월 14일까지 5,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북한군 3개 사단과 1,211고지를 3번이나 점령했다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1,211고지를 적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사단은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냈으며, 현 진지를 10월 20일 제3사단에 인계하고 육본 직할로 전환되어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했다. 그 후 사단은 1952년 1월 13일 제1군단에 배속 전환되기 전까지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에 전념을 하면서 인근 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했다. 이영만 일병은 양양 지역에서 예하부대와 통신망 확립을 위해 통신망을 점검하다가 1951년 12월 7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만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3판-41면-2256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ㄹ-058)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