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만(李永万)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8009
  • 전몰일자 : 19500913

공훈사항

이영만 일병은 경기도 인천시 화수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한 1950년 8월 2일, 경북 대구의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19연대로 배치되었다.
이영만 일병이 부대로 배치된 8월 15일, 제6사단은 군위, 의흥을 거쳐 매봉산과 산운동 일대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날부터 북한군 제1사단은 전차로 증강된 보병과 전차부대의 협동으로 맹렬히 공격했고, 제19연대는 강력히 저항하여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그리고 연대는 8월 21일 야간에 민부대와 진지를 교대한 후 사단 예비가 되었다. 그러던 중 연대는 8월 25일에 사단 명령에 의거 공세적인 행동으로 적의 측방을 공격하여 의흥 북쪽의 수북동 고지까지 진출했으나, 이 시기에 북한군이 조림산 북쪽의 고지를 무혈점령하여 신녕이 위기에 처했다.
이에 제19연대는 8월 26일에 신속히 신녕지역으로 투입되어 조림산을 탈취하기 위해 공격했다. 연대는 8월 28일에 조림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9월 4일까지 공격했으나 목표 탈환에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인접의 제8사단에서 영천을 적에게 빼앗기는 위기가 발생했다. 이에 이영만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제8사단을 증원하기 위해 9월 5일에 영천 지역으로 투입되어 영천전투에 참가하였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6일부터 금호강 북쪽에서 영천역과 완산동 방향으로 공격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했다. 이후 영천전투를 승리로 장식했고, 연대는 9월 12일에 사단으로 복귀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9월 13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만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0판-7면-11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0-ㄱ-03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