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만(李永滿)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01169
- 전몰일자 : 19500922
공훈사항
이영만 일병은 1930년 7월 6일에 경상북도 월성군 천북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던 때인 1950년 8월 중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만 수료하고 제6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를 직접 지원하고 있었다.
이영만 일병이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인 1950년 8월 28일, 제6사단은 신녕 북방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있었다. 이후 북한군은 9월 2일 18시를 기해 국군방어지역에 대해 총공격을 개시했다. 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맞이하여 화산 주봉–725고지를 연하는 방어선에서 사력을 다해 격퇴했다. 북한군은 격렬한 공격으로 아군을 위협하여 9월 5일엔 영천, 경주, 포항을 점령했고, 국군은 큰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이에 국군은 유엔군의 모든 화력, 즉 포병의 지원화력과 미 공군 전폭기의 근접지원사격을 지원 받아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했다.
당시 이영만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를 직전지원하여 신녕 북방에서 성공적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북한군은 큰 피해를 받고 9월 12일 이후부터는 공세를 취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 부대와 보조를 맞추어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제6사단도 지금까지 방어하던 정면의 적을 향해 반격을 개시했다.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강력히 저항했다. 사단은 9월 18일에 조림산 일대의 북한군을 포위 섬멸하고자 했으나,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했다.
제7연대는 9월 19일에 사단의 주공으로서 재공격을 개시하여 22일에 조림산 주봉을 탈취했다. 이날 적들은 가벼운 저항을 하면서 퇴각했다. 이영만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보병연대 공격의 최선봉에서 장애물 개척 임무를 수행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철조망 지대를 개척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만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2판-5면-00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0-ㅅ-07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