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만(李永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K1135291
  • 전몰일자 : 19520913

공훈사항

이영만 일등중사는 경상북도 경주군 안강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1950년 9월 20일 육군에 분연히 입대했다. 이 일등중사는 카투사(KATUSA) 요원으로 선발되어 미 제24사단에 배치되어 적정수집, 포로신문, 편의대 활동 등으로 전공을 세우고, 제9사단이 창설될 때 동 사단으로 전속되어 제29연대에 배치되었다.
제9사단은 10월 25일 제28·29·30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서울에서 창설되었고, 제29연대는 충남 공주에서 창설되었다. 연대는 1950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경북 김천지구 및 왜관지구에 투입되어 공비들을 소탕했다.
사단은 12월 19일부로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중공군 제3차 공세(신정 공세) 때 연대는 1951년 1월 3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이다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하여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창리 일대에서 중공군 2월 공세를 격퇴하고,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4월 들어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작전을 개시했고, 제29연대는 4월 2일부터 19일까지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강릉 일대에서 강원 고성군 진부리로 진격했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연대는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제9사단은 5월 29일부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포천으로 이동했다. 연대는 6월 고대산 전투와 김화읍 계웅산 전투에서 중공군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동 고지들을 점령했다. 연대는 281고지(화살머리고지) 전투(11. 3.~4.)와 395고지(백마고지) 전투(11. 6.~17.)에 투입되어 중공군 제126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동 고지를 확보하고 계속되는 적의 역습을 격퇴했다. 연대는 1952년 1월 11일 평강 진출로 상에 있는 신회산(343고지)을 공격하여 적의 방어시설을 파괴하였으나, 1월 30일 신회산 인근의 감제고지인 252고지 공격에는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했다.
1952년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전선에 배치됨에 따라 전선이 조정되어 사단은 동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이 일등중사는 9월 13일 수색작전 중에 적의 습격을 받자, 소대원을 이끌고 용감하게 앞장서서 적과 싸우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만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42120 육)을 추서하고, 전사자 명비(069-ㅁ-02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