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만(李永萬)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501909
  • 전몰일자 : 19500718

공훈사항

이영만 이등상사는 1929년 4월 3일 경상남도 울산군 서생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일제의 패망과 광복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혼란하던 1947년 7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영만 이등상사가 소속된 연대는 38도선 경계부대의 방어력 증강을 위해 진지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이 시작되면서 전면전이 되고 말았다. 이 이등상사는 즉각 방어전투에 투입되었다. T-34전차를 앞세워 공격을 시작한 북한군은 그날 아침 개성을 점령하고 임진강 방향으로 공격을 확대하였다.
이영만 이등상사가 소속된 연대는 임진강 도하 작전에 참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으나 T-34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은 임진강을 도하한 후 6월 28일 문산-서울 축선을 지향하고 있었다. 연대 일부에서는 대전차특공대를 편성하여 육탄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이 이등상사와 장병들은 소규모로 분산된 채 파평산 방향으로 철수하면서 저항을 계속하였으며 북한군의 문산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다.
이영만 이등상사와 연대병력은 7월 13일 미원 북방에서 방어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연대정면에 집중하고 있는 북한군은 갈령, 화령장, 이화령, 조령, 죽령에서 소백산맥을 신속히 돌파하고 상주와 안동 방향으로 진출할 계획이었다. 북한군 제15사단이 괴산에서 부대정비를 마치고 16일 미명 미원 북방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부흥리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이 이등상사와 연대병력이 한때 위기를 맞이하였으나 북한군의 진출을 더이상 허용하지 않고 저지하였으며, 다음날에도 전차 3대와 장갑차 12대로 전력을 증강하여 공격을 재개한 북한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북한군 제2군단의 집요한 공격에 밀려 이 이등상사가 소속된 연대는 다시 미원 남쪽으로 진지를 전환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싸우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이영만 이등상사는 1950년 7월 18일 미원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만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32묘역-1판-2425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0-ㅌ-06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