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명(李永明)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3266
  • 전몰일자 : 19510206

공훈사항

이영명 일병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이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1950년 7월 10일 제3사단에 입대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3사단은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제22연대와 제23연대의 대전차포중대 및 2개의 중화기중대를 서울로 출동시키고, 부산의 제23연대만을 가지고 7월 1일 동해안 축선의 울진에 투입되었다. 사단은 북한군 제766부대의 압도적인 공격에 밀려 지연전을 계속했고, 7월 13일 영해 북방의 고지군을 점령하여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이후 사단은 영덕과 그 북방의 화림산과 207고지 일대, 영덕 동남쪽(1km)의 181고지-207고지 능선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이어가며 적의 남진을 지연했다. 일련의 전투에서 이 일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 7월 하순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그는 12월경 부상에서 회복되어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육군 제5훈련소 예하 제13교육대 조교 요원으로 배치되었다.
한편, 8월 14일 대구에 육군본부 직할로서 육군 제1훈련소로 재창설되었고, 이어 제2·3·5·6·7훈련소가 창설되었는데, 이 중 제5훈련소는 8월 22일 제주도 모슬포에서 창설되었고, 제13교육대는 동 훈련소 예하로 창설되었다. 1951년 1월 22일 육군본부는 여러 훈련소를 통합하여 제1훈련소로 제주도 모슬포에 재창설했다.
이 일병은 조교로서 신병 교육훈련에 열성을 다했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제주 4·3사건’(1948년 4월 3일 발생) 때 군·경의 토벌작전에서 살아남거나 한라산으로 도피한 공산주의자 잔당들이 준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중공군의 참전과 남진에 고무되어 수시로 출몰, 지서나 관공서 등을 습격·파괴했다. 그리고 때로는 우익 인사에 대해 테러를 하거나 민간인을 납치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때마다 제주도에 있는 해병대 병력이나 제5훈련소 기간요원이 출동해서 이들을 소탕하곤 했다.
이 일병은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기동타격대로 편성되어 소탕작전에 앞장서 왔다. 그런데 1951년 2월 6일 모슬포 인근에 게릴라들이 출몰하자, 이 일병과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이 일병은 앞장서서 게릴라들을 추격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명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8판-6면-26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5-ㄷ-03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