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모(李永模)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1106
  • 전몰일자 : 19510712

공훈사항

이영모 일병은 전라남도 승주군 남강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일병은 나라를 구하고자 일어섰다. 그는 1950년 8월 5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수도사단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유엔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과 결전을 벌이고 있었고, 수도사단은 경북 기계 축선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연대는 기계, 안강전투에서 북한군을 격퇴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 돌파 위기를 해소할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반격으로 전환했다. 연대는 23일부터 청송-춘양-영월-평창-38도선으로 진격했고,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강원도 간성-원통-양구-회양-신고산-안변 방향으로 진격했다. 이후 원산(10일), 함흥(17일), 청진(25일)을 차례로 점령하고, 30일 부령까지 진출하여 한·중 국경선을 목전에 두었으나, 이날 중공군의 참전으로 흥남으로 철수했다. 12월 10일 연대는 제3사단과 함께 흥남에서 해상 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고, 2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1951년 1월 2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유엔군의 리퍼작전(3월) 때는 38도선 상의 현리 일대에서 적과 격전을 치렀다. 연대는 4월 중순 한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강원 인제의 한석산, 매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방어선인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지켜냈다. 중공군은 5월 16일 제5차 공세(5월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연대는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적의 포위망을 뚫고 방태산-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동해안 지역의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양, 설악산, 고성 일대에서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이 일병은 7월 12일 설악산 일대에서 수색정찰작전 중 적 정찰대와 조우하여 전투 중에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모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1판-8면-08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7-ㅁ-05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