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모(李永模)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2301632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영모 일병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광복 후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8년 6월 10일 제1사단 제11연대로 현지 입대하여 소총병으로 복무했다. 당시 연대는 개성지역 38도선 경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 후 1950년 4월 25일 연대는 개성지역 38도선 경계 임무를 제12연대에 인계하고 사단의 예비대로 수색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영모 일병은 부대원들과 함께 방어력 증강을 위한 진지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 시기에 북한군의 도발이 수시로 이어지면서 긴박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이 시작되면서 전면전이 되고 말았다. 이에 제11연대는 임진강 방어작전에 참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으나 T-34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은 임진강을 방어한 후 문산-서울 축선을 지향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군의 전투력은 아군에 비해 월등히 우세했다. 연대의 일부는 대전차 특공대를 편성하여 육탄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38도선 방어진지는 6월 25일 오전 중에 무너져 버렸다. 연대는 소규모로 분산된 채 파평산 방향으로 철수하면서 저항을 계속했다. 이 때 이영모 일병은 중상을 입고 수도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는 건강을 회복하여 1950년 10월 8일 대구에서 재창설된 제5사단 제35연대로 재배치되었다.
이영모 일병이 부대에 재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작전이 한참 진행 중에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아군의 북진으로 10월 13일부터 영남지구 공비토벌작전에 투입되어 11월 22일까지 각 연대별로 책임지역을 할당하여 후방지역작전을 실시했다. 이영모 일병이 소속된 제35연대는 진주에 전술지휘소를 점령하고 지리산 동부지역의 적 패잔병 소탕을 위하여 제1대대를 하동에, 제2대대를 진주에, 제3대대를 단성에 배치했다. 연대의 작전은 10월 15일부터 시작됐다.
당시 북한군 패잔병과 좌익 빨치산들은 수시로 산간지역 마을을 습격하여 양민들을 살해하고 보급품을 조달했다. 이에 제35연대는 경찰과의 긴밀한 협조로 많은 전과를 올렸다. 이런 국군의 후방지역작전으로 수복지역은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영모 일병은 1950년 10월 25일 하동 지역에서 후방지역 공비소탕을 위하여 전투 중 적 게릴라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모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1판-5면-18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0-ㅁ-046)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