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무(李永茂)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3104
- 전몰일자 : 19500625(전사자 명부에는 전사일이 6월 25일로 되어 있으나, 미 제25사단의 한국전 투입 이후인 9월 25일로 수정하여 작성함.)
공훈사항
이영무 일병은 경상북도 월성군 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12일, 부산에 있는 육군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카투사(KATUSA)로 분류되어 미 제25사단 제24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미 제25사단은 마산 서부지역 일대에서 방어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미 제25사단은 킨(Kean) 특수임무부대(제35연대, 제5연대, 미 해병 제5연대)를 편성하여 마산 정면의 북한군 제6사단의 공격을 저지하고, 진주 고개-사천 선까지 진출하여 부산교두보를 안정시키기 위해 공격작전을 펼쳤다. 킨 특수임무부대는 8월 7일 공격작전을 개시하여 진주 고개까지 진출했으나, 북한군들이 산악지대에 은폐해 있다가 아군부대에 후방차단 및 기습공격을 가함에 따라 8월 12일에는 진동리-남지 선으로 후퇴했다. 킨 특수임무부대는 8월 16일에 해체되고 제5해병여단은 제8군사령부의 예비로 전환되었다. 이후 미 제25사단 장병들은 마산 서부지역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의 진출을 저지하는 방어작전을 수행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부로 낙동강방어선에서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미 제25사단은 9월 16일부터 총반격작전에 참가했다. 북한군들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완전히 차단된 것을 모르고 서북산 등 험준한 산악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강력히 저항했다. 사단은 강력한 항공 및 포병화력 지원하에 9월 17∼18일 양일간 맹공을 가했고, 적들은 19일까지 저항하다가 이날 야간에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 제25사단은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사단은 9월 25일 진주를 탈환하고, 이후 남원-전주를 거쳐 9월 29일에 강경을 탈환했다. 이 일병은 미군 장병들과 함께 적 추격에 앞장서다 9월 25일 진주에서 적 패잔병의 기습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9-ㅍ-04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