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무(이영무)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05926
  • 전몰일자 : 19501202

공훈사항

이영무 일병은 1921년 4월 2일 경상북도 경주군 서방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8월 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24일,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카투사(KATUSA) 병으로 차출되어 미 제2사단에 배치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부터 낙동강 선에서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미 제2사단도 9월 16일부터 반격작전에 참가했다.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된 것을 모르고 낙동강 선에서 강렬하게 저항하다가 9월 20일부터 퇴각하기 시작했다. 사단은 9월 18일에 낙동강을 도하한 후, 9월 20일부터 본격적으로 북한군을 추격하여 9월 24일에 합천을 탈환하고 거창-전주-논산을 거쳐 9월 30일에 강경을 탈환했다.
미 제2사단은 퇴로가 차단되어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덕유산과 지리산 일대로 숨어 들어간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한편, 미 제8군은 10월 초순에 38도선을 돌파하여 10월 19일에는 평양을 탈환하고, 24일에는 청천강 선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은 10월 24일에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실시했으나, 적유령산맥 일대에 숨어 있던 대규모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미 제8군은 후방지역작전을 하고 있던 미 제9군단과 미 제2·제25사단을 청천강 선으로 북상시켜 전선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에 미 제2사단은 지리산과 덕유산 일대의 후방지역작전을 11월 2일부로 국군 제11사단에 인계하고, 11월 15일 평안남도 개천 및 군우리 지역으로 이동했다. 유엔군은 정확한 적정을 모른 채 11월 24일에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시작했고, 미 제2사단은 희천을 목표로 공격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중공군 제40군단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후방이 차단되어 11월 27일에 군우리 일대로 철수했다.
미 제2사단은 11월 29일에 군우리에서 철수하여 협곡지대인 일명 '태형의 계곡'을 통과하던 중 중공군 제42군단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부대가 와해 상태에 이럴 정도로 큰 피해를 입고 12월 1일에 순천을 거쳐 평양에 도착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퇴로를 개척하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2월 2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0판-5면-23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7-ㅂ-08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