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무(이영무)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13156
  • 전몰일자 : 19510518

공훈사항

이영무 중위는 서울시 성동구 신당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1년 1월 중순에 국가의 간성이 되기 위한 큰 뜻을 품고 동래의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하였다. 그는 단기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951년 4월 28일 장교로 임관되어 제1사단 제15연대 수색대 소대장으로 보직되었다.
이영무 중위가 전선에 부임할 무렵 중공군의 4월 공세를 격퇴한 국군과 유엔군이 골든-노네임선에서 부대 재배치와 방어진지 보강에 주력하고 전방사단들은 주저항선 전방에 정찰기지를 설치하여 방어종심을 증가시킴은 물론, 적정을 탐지하기 위하여 정찰대들은 화력의 엄호하에 적진 깊숙이까지 정찰작전을 펼쳤다. 이때 공산군은 전 전선에서 아군과 접적을 회피하는 등 활동이 소극적이었으나 유일하게 국군 제1사단이 방어 중인 문산-서울 축선에 북한군 제8사단을 투입하여 정찰기지 설치를 저지하였다.
이영무 중위가 소속된 제15연대는 정찰기지 확보는 물론 적 8사단을 격멸할 목적으로 5월 6일 국사봉(109고지) 일대로 진출하여 공격 준비를 완료한 후 7일 오전 6시에 미 제3사단의 엄호하에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 중위와 연대병력은 적정이 경미하여 원당리 부근으로 순조롭게 진출하였다. 제15연대는 우세한 포병 및 전차 화력지원에도 불구하고 북으로 진출할수록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과 중공군의 증원으로 163고지와 박달산 부근에서 공격이 좌절되었다. 다음날(10일) 오후 이 중위의 지휘하에 연대병력은 문산-서울 도로변의 명봉산-대자동-관산리 일대의 정찰기지에 배치하고 방어태세를 보강하면서 위력수색에 열중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장병들에게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소대장이었다. 이영무 중위는 일부 병력과 정찰활동을 하던 도중 북한군과 조우하여 사격전을 전개하며 고군분투하였으나 끝내 방어하지 못하고 1951년 5월 18일 연천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무 중위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5425 육)을 추서하고 유해(15묘역-8판-4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ㄷ-09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