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무(李永武)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504434
- 전몰일자 : 19500727
공훈사항
이영무 일병은 1925년 4월 17일 경상남도 사천군 곤명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1월 2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제1사단이 개성 일대의 방어력 증강을 위한 진지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무렵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이 시작되었다. 이영무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봉일천 북쪽 위전리-도내리를 연하는 최후저지선으로 철수하여 마지막 결전을 펼치면서 반격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야음을 틈타 금촌의 방어진지로 철수하였다. 이어 27일 북한군의 주력이 전방 주저항선을 돌파하고 문산-의정부 선까지 진출하자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봉일천과 창동선에 급편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서울 방어를 위한 최후의 저항을 준비하였다.
북한군 제3사단이 7월 4일 새벽에 공격을 개시하여 금곡리 부근으로 밀어붙이고 풍덕천-수원 도로를 따라 남진하자, 이영무 일병과 사단 병력은 한때 이들을 일제사격으로 격퇴하기도 하였으나 곧 이은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해 방어선이 돌파되고 결국 7월 4일 평택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7월 8일 음성을 중심으로 외곽방어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의 행군대열의 절반이 방어 정면으로 들어섰을 때 105mm 곡사포의 지원사격 하에 각종 화기를 일제히 집중함으로써 적의 남진을 분산시켰다. 북한군 제15사단은 9일 새벽 음성에 포격을 집중하면서 2개 연대병력을 각각 8대의 장갑차의 지원하에 연대 정면으로 공격하였으나 그와 연대병력의 집중적인 저지 사격과 역습에 의해 다시 저지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무렵 북한군이 공격을 재개하여 돌파를 기도함으로써 연대는 점차 위험한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고 10일 낮부터 철수를 단행하여 괴산 북쪽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점령하게 되었으며, 7월 17일에는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에 밀려 미원 남쪽으로 진지를 전환하였다.
이 일병을 비롯한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으나 북한군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이영무 일병은 1950년 7월 27일 함창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무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337 육)을 추서하고 위패(29판-5면-14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0-ㅇ-07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