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문(李永文)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K1136199
- 전몰일자 : 19510215
공훈사항
이영문 이병은 1928년 8월 23일 경상북도 경산군 하양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으로 전환하여 북진하던 1950년 9월 20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카투사(KATUSA)로 선발되어 미 제7사단에 배치되었다.
이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미 제7사단은 부산에서 원산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단은 10월 27일 원산을 향해 출항했다. 그런데 국군 제3사단이 이미 10월 10일에 원산을 점령한 관계로, 미 제7사단은 10월 29일에 행정적으로 이원에 상륙하여 11월 8일부터 풍산-갑산을 거쳐 11월 21일 혜산진을 점령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대규모 중공군이 장진호 부근에서 미 제1해병사단을 포위공격하고, 원산 일대를 점령하여 철수로를 차단하였기 때문에 사단은 11월 27일부터 철수를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병이 소속된 미 제32연대는 철수 도중에 장진호 동쪽의 중공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고 하갈우리로 집결했다. 중공군은 장진호 일대에서 포위된 미 해병 제1사단을 섬멸하기 위해 맹렬한 공격을 실시했다. 미 제32연대는 미 해병 제1사단과 함께 12월 6일 돌파작전을 감행하여 8일에 ‘죽음의 계곡’을 통과하여 고토리에 도착했고, 10일에는 황초령을 돌파하여 진흥리로 향했다. 그리고 11일에 함흥지역까지 철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미 제7사단은 미 제3사단과 함께 미 제1해병사단의 철수를 엄호한 후에 12월 21일에 흥남항에서 출발하여 12월 22일에 부산항을 통해 입항했고, 바로 대구로 진출하여 부대정비를 했다. 중공군이 12월 31일 야간에 제3차 공세(일명 신정 공세)를 감행하자, 사단은 1951년 1월 7일에 대구에서 북상하여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평창 남서쪽과 원주 동남쪽 백운산 고지군을 점령했다.
사단은 미 제9군단의 반격작전인 라운드업(Round Up) 작전 때(2. 5.~2. 11.) 군단의 예비부대로서 전방의 국군 제5·8사단을 후속하여 홍천을 향해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2월 15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문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1판-7면-04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ㅌ-06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