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민(李永玟)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03145
  • 전몰일자 : 19530618

공훈사항

이영민 하사는 1927년 12월 10일에 경상북도 상주군(現 상주시) 이안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휴전회담이 진행되며 38도선 일대에서 전선이 고착되던, 1952년 3월 4일 입대하여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 후 훈련소로 배치되었다. 이 하사는 조교로 선발되어 자체방어 및 신병교육에 전념하다가 1952년 6월 13일 창설된 제52교육보충연대로 전속되었다.
제52교육보충연대는 6·25전쟁 기간 한국군 사단 증편계획에 따라 새로 창설된 부대였다. 1951년 7월 10일에 시작된 휴전회담이 해를 넘겨 계속되자 한·미 양국은 미군 재보충의 어려움과 휴전 후의 한국 국방을 고려하여 1952년 초부터 육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4월 28일 3개의 경장비 교육보충연대(제37·38·39연대)가 창설되었고, 6월 13일 다시 같은 성격의 3개 연대(제50·51·52연대)가 창설되었다. 이 중 제52교육보충연대는 독립연대로서 강원도 화천 축선을 담당하고 있던 제2군단 예비로 투입되었고, 교육훈련을 하면서 후방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보급로 확보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제12사단은 11월 8일 강원도 양양에서 신편된 제53·55·56교육보충연대를 잠정 배속하여 창설되었다가, 12월 10일부로 이들 연대를 배속 해제하고, 중장비 연대로 개편 완료된 제37·51·52연대를 건제부대로 편성했다. 사단은 12월 18일 인제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을 끝내고, 12월 27일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12월 30일 美 제45사단과 임무 교대하여 서화계곡을 감제하는 812-854고지를 잇는 전선을 인수했다.
이영민 하사가 소속된 제52연대는 사단 예비로서 진지교대 이후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진지를 보강하면서 위력수색,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적은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한편으로, 새로 투입된 중공군의 전투경험 축적과 아울러 방어선을 개선할 목적으로 6월 공세를 감행했다. 이 공세의 일환으로 사단 정면의 북한군 제3군단 예하 제45사단이 1953년 6월 1일부터 공격을 가해왔다.
사단 좌전방의 제37연대가 812고지를 탈취당하자, 제52연대는 역습을 감행하여 6월 10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지만 결국 812고지를 탈환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이영민 하사는 복무기간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6월 7일 분대원을 진두지휘하며 선두에서 돌격하다가 중상을 입고 인제에 위치한 이동외과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6월 18일 애석하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민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47557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75-ㄷ-057)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