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민(李榮玟)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3011
- 전몰일자 : 19501101
공훈사항
이영민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원대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으로 지연전을 수행하던 1950년 7월 10, 대구에 설치된 육군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에 배치되었다.
이영민 일병이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인 7월 말, 제6사단은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사단은 신령 북쪽의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북한군과 일진일퇴를 반복하고 있었다. 사단은 이곳에서 북한군의 8월 공세와 9월 공세를 격퇴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에 보조를 맞추어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낙동강 선으로부터 일제히 반격했다. 이영민 일병이 소속된 제6사단은 조림산 일대의 북한군을 포위 섬멸하고자 했으나 북한군도 방어진지를 강화하고서 완강히 저항했다. 북한군은 9월 21일이 되자 퇴각하기 시작했고, 이에 제6사단은 9월 22일부터 함창을 거쳐 충주 방향으로 추격하여 9월 29일에는 충주를 확보했다.
이영민 일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사단의 선두부대로서 10월 4일에 춘천을 점령하고, 5일에 38선을 돌파했다. 이후 화천을 거쳐 김화-신고산–성천–양덕–순천 방향으로 진격하여 10월 23일에는 희천을 점령했다. 10월 26일에 압록강변의 초산을 점령한 후 그가 소속된 제1대대는 국경선 경비임무에 돌입했다. 이때 은밀히 침투한 대규모 중공군으로부터 후방을 차단당하면서 초산에서 철수했다. 그는 30일까지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 공중보급을 받으면서 험준한 산길 130km의 원거리를 각각의 부대별로 남하하여 11월 1일에 개천으로 집결했다. 이영민 일병이 소속된 부대는 후방을 차단한 중공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며 철수했고,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2-ㅈ-00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