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배(李英培)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5103274
  • 전몰일자 : 19501002

공훈사항

이영배 상병은 1929년 1월 5일 경기도 평택군 오성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49년 1월 15일 제5여단 제19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가, 육본 직할부대인 육군병참단으로 전속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은 38도선의 전 전선에 걸쳐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전방의 각 사단은 T-34 전차를 앞세운 적의 기습공격에 큰 피해를 입고 방어진지가 무너져 철수를 거듭했다. 특히, 제7사단은 북한군의 T-34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 무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병력 면에서는 7배, 화력 면에서는 18배나 우세한 적과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절대적인 전력의 열세 속에서 1950년 6월 25일 주저항선인 포천이 적에게 함락되고, 6월 26일에는 의정부마저 함락되게 되었다.
육군본부는 부족한 병력과 장비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했다. 육본은 수도 서울 방어를 위해 후방에 위치한 3개 사단에 대해 병력이 집결되는 대로 대대 및 연대 단위로 전선에 투입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본부 직할의 재경부대를 동원해 전방의 제7사단에 배속시켜 방어력을 증강했다. 또한, 6월 26일 저녁에는 육본 교도연대를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시켜 창동 지역에 배치했다.
이 상병과 일부 병참단 장병은 육본 교도연대에 편성되어 창동 일대에 투입되었으나, 빈약한 장비와 탄약으로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6월 27일 정오가 조금 지나면서 적 전차에 의해 창동방어선이 돌파되자, 장병들은 소총으로 저항하며 한강 이남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병참단은 안양-수원-평택을 거쳐 7월 5일 충청남도 대전으로 이동했고, 전세가 악화됨에 따라 7월 11일 김천을 거쳐 대구로 이동하면서 지연전을 실시하며 악전고투하는 전방부대에 대한 보급지원을 계속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지연전을 실시하여 8월부터는 낙동강방어선에서 적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북진하자, 병참선이 길어지면서 병참단은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전방 부대를 지원해야 했다. 이 상병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방 부대들을 밀접히 지원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 상병은 10월 2일 분대원을 이끌고 이동하던 중에 적 게릴라의 습격을 받았으나, 이들을 격퇴함으로써 막대한 군수품을 지켜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 이 하사는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배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3-ㄱ-01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