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배(李榮培)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339546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영배 상병은 1933년 11월 15일에 경기도 인천시 화수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럽던 1949년 7월 13일, 서울 용산에 주둔한 제1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50년 4월 19일에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고, 사단의 예비로서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침공했을 때, 제19연대는 아침 7시경에 비상을 걸어 출동준비를 했고, 당시 연대 장병들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얼마 후 최전선에서 북한군의 침략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연대장은 참모학교 교육과정에 참여하였고, 부연대장이 직무를 대행하고 있었다. 또한 대부분의 장병들은 휴일이라 외출 및 외박을 나갔기 때문에 영내에는 일부 병력만 남아 있었다.
이영배 상병은 대대 장병들과 함께 외출하지 않고 영내에 대기하고 있다가 전방투입 출동명령을 받았다. 그가 소속된 제3대대 장병들은 연병장에 집결하여 개인별 1기수의 탄약과 함께 충분한 양의 보급품을 받아 연대수색대와 함께 연대에서 보낸 차량에 분승하여 오후 1시에 원주에서 출발했다. 차량은 영월광업소에서 징발한 5대를 포함하여 20대로서 제3대대 장병들만 탑승할 수 있었다. 한편 외출에서 복귀한 제1, 제2대대 장병들은 기차로 저녁 8시에 원주역을 출발하여 청량리를 경유 춘천역으로 향했다.
이영배 상병이 소속된 제3대대 장병들이 저녁 8시에 춘천에 도착했을 때, 북한군은 시내 곳곳에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전황이 긴박하다고 판단한 대대장은 이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제7연대와 긴밀히 협조하여 춘천 남쪽 지역에서 병력을 하차시킨 후 급속행군으로 이동했다. 춘천역을 돌아 북한강을 건넌 대대는 밤 11시경에 북한강 서안의 금산리 북쪽 1.5km 지점 217고지 일대에 병력을 배치하고 화천에서 남하하는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했다. 북한군은 제3대대의 배치를 알고 공격을 퍼부었다. 대대 장병들은 북한군의 강렬한 공세에 맞서 용감하게 전투함으로써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배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5판-8면–02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7-ㄹ-08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