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배(李永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58426
  • 전몰일자 : 19511106

공훈사항

이영배 일병은 서울특별시 성동구 돈암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선으로 후퇴했던 1950년 12월 5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영배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1951년 1월 중순, 제6사단은 장호원 북방의 죽산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이후 유엔군은 중공군의 2월 공세를 격퇴하고 21일부터 공세(일명 '킬러작전')로 전환했다. 제6사단은 강원도 횡성 방향으로 공격하여 탈취했다. 그리고 사단은 서쪽으로 이동하여 3월 13일에 용문산(1157고지)과 홍천강을 점령하고, 20일에는 북한강(당시 춘천 서남쪽 6km인 의암리와 가평 간을 점령했다. 이후 ‘중공군의 4월 공세’와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5월 20일부터 용문산 방어진지에서 공격으로 전환했다. 5월 25일에 가평-춘천 사이의 산악지대인 계관산-북배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5월 28일에 구만리발전소(현 화천수력발전소)-병풍산을 잇는 지역을 확보했다.
제6사단은 6월 5일부터 철의 삼각지대인 김화 및 철원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했다. 이영배 일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643고지-887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 6월 10일에 취봉을 확보하고, 15일에는 백암산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함으로써 등대리-단거리-수리봉을 연하는 선을 점령했다.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간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시키면서 군사력 증강에 몰두하자, 유엔군사령부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진지 전방에 대한 공세활동을 하도록 각 부대에 명령했다. 이영배 일병이 소속된 제6사단은 우선 방어진지 전방의 819고지를 8월 30일부터 두 차례에 걸쳐 공격하여 탈취했다. 나아가 금성천 분지를 확보하기 위해 교암산을 공격하기로 했다. 사단은 10월 13일부터 공격하여 9일 동안 중공군을 대파하고 21일에는 교암산-송동리까지 진출하여 금성천 분지를 탈환했다.
이후 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에서 보강작업을 하며 적의 도발에 대비해 감시활동을 강화했다. 이영배 일병이 소속된 소대는 11월 6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24묘역-2판-800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ㄴ-08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