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백(李永栢)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1609
  • 전몰일자 : 19500819

공훈사항

이영백 일병은 경상남도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여 방어선을 형성하던 1950년 8월 2일에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영백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을 때인 8월 중순, 제17연대는 기계-안강 지역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고 있었다. 이후 북한군 제12사단의 공세를 격퇴하고, 연대는 영광스럽게도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정되어 9월 14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했다. 그리고 9월 18일에 인천으로 미 제1해병사단에 이어 후속 상륙하여 미 제7사단에 배속되었다. 연대는 영등포 남쪽으로 기동한 후 신사리에서 한강을 건너 남산을 탈취하고, 서울의 동쪽 지역을 점령했다. 이후 서울에서 주요시설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제31연대가 서울에서 창설될 때, 그는 제31연대로 전속되었다.
제2사단은 11월 7일에 서울에서 재창설되었고, 이때 제17연대와 당시 신편 된 제31, 32연대를 예속시켰다. 이후 사단은 포천-평강 지구로 이동하여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당시 북한군 패잔병들은 중공군 침공 시기에 맞춰 유엔군의 후방을 적극적으로 교란하여 유엔군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이영백 일병이 소속된 제31연대는 의정부 일대에 근거지를 설치하고 작전했다. 한편 국군과 유엔군 주력은 압록강을 향해 10월 말과 11월 말에 두 차례에 걸친 총공격(일명 추수감사절 및 크리스마스 공세)을 실시하였으나, 그때마다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에 후방이 차단당하여 큰 피해를 받았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12월 8일부로 전 부대가 38선 상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영백 일병이 소속된 제2사단도 포천 북방의 양문리 – 탑두울을 잇는 방어선을 점령했다. 사단 장병들은 곧 닥쳐올 중공군 공격에 대비하여 방어진지를 강화하면서 수색정찰 활동을 강화하고 있었다. 당시 중공군은 부대별 선견대를 파견하여 차후 공격을 위해 정찰 활동을 활발히 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12월 19일에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중공군 정찰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전몰일자는 1950-08-19는 제31연대가 창설되지 않은 시기이므로 1950-12-19로 조정했음)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백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55묘역-3판-3660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6-ㄱ-08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