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백(李永白)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62173
- 전몰일자 : 19501022
공훈사항
이영백 일병은 1929년 6월 28일에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준비를 하던 1950년 9월 12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본적인 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6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19연대를 직접했다.
북한군은 9월 2일에 최후 공세를 감행하여 대구-영천-경주 등 일부 지역을 일시적으로 탈취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신령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히 잘 극복했다. 인접의 국군 제8사단이 9월 6일에 영천을 최초로 적에게 빼앗기는 위기가 발생했다. 이에 제6사단은 육본 명령에 의거 제19연대를 증원하여 금호강 북쪽에서 영천역과 완산동을 협공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했다. 이로써 제8사단은 영천의 위기를 벗어나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북한군은 영천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고 퇴각하였고, 제19연대는 제6사단으로 복귀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낙동강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이영백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10월 초순, 제6사단은 패주하는 북한군 제8사단을 함창-문경-충주-원주 방향으로 추격하여 9월 30일에 원주를 탈환하고, 춘천 방향으로 계속 공격했다. 제6사단은 10월 6일에 38선을 돌파했다. 이때부터 북한군의 저항은 점점 강해졌다. 사단은 계속 공격하여 10월 10일에 금성을 탈환했고, 13일에 신고산을 거쳐 덕원을, 16일에 마식령을 넘어 평남 양덕에 도착했다. 10월 19일에는 진격 방향을 바꾸어 순천-개천-희천 방향으로 공격하여 20일에 희천을 탈환하고, 이곳에서 유엔군의 총공세작전을 준비했다.
이영백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북진작전 간에 제19연대의 선두에서 장애물을 개척했다. 공병중대는 10월 22일에 희천에서 추후 개시될 총공세에 대비하여 공격통로에 적이 설치한 지뢰지대를 개척하던 중 적 게릴라로부터 기습을 받았는데, 이를 격멸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백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4판-3면-230호)를 국립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1-ㅇ-04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