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병(李永柄)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641357
- 전몰일자 : 19510130
공훈사항
이영병 이병은 1929년 10월 1일에 출생하였다(출생지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3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영병 이병이 소속된 사단은 북한군의 기습남침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긴급 참전한 유엔군의 지원으로 낙동강까지 철수한 후 8월 포항으로부터 안동-영천-신령-칠곡-현풍-창녕-마산을 잇는 200㎞ 길이의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 이병이 소속된 연대는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 편성에 주력하였으며 9월 14일에는 가산성 가장자리까지 진출하였다.
이영병 이병과 연대병력은 북진작전을 위해 10월 4일 후방작전지역을 인계하고 임진강 북안의 고랑포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이 이병과 연대 장병들은 10월 23~24일 안주 일대에서 청천강을 도하 한 후 25일 운산에 도착하였다. 이후 11월 청천강 남쪽의 신안주 부근에서 재정비를 완료한 후 25일에는 운산 공격을 개시하였다.
크리스마스 공세를 시작한 지 닷새째인 11월 28일 연대는 태천 외곽까지 진출하였으나 중공군의 공격에 밀려 박천 북쪽의 중막동-용산동 선을 점령하였다. 이영병 이병은 연대병력과 함께 12월 7일 구월산 일대에서 활동 중인 1개 대대 규모의 패잔병을 소탕하였으며 이후에도 위천리, 구화리 일대의 축차적인 지연 진지를 점령하여 아군의 철수를 엄호하면서 지역내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철수가 완료되자 14일에는 고랑포-적성 일대에 배치되어 주저항선을 편성하였다.
1951년 1월 5일 안성 북쪽에 배치된 이영병 이병과 연대병력은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개전초기와 ‘1.4후퇴’로 두 번씩이나 서울 사수에 실패한 불명예를 씻기 위해 심기일전하여 불퇴전의 정신력 배양, 교육훈련, 장비보충에 주력하였으며 1월 말 유엔군과 함께 반격을 시작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임하였다.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영병 이병은 1951년 1월 30일 안성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병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3-ㄹ-02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