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보(李永寶)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109178
- 전몰일자 : 19510216
공훈사항
이영보 이병은 경상북도 안동군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이병은 1950년 11월 8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청천강 일대에서 38도선으로 철수하고 있었고, 제7사단도 철수 중이었다. 미 제8군은 김포반도-임진강-화천-양양을 잇는 선을 주저항선으로 설정하고, 중서부전선은 미군에, 동부전선은 한국군에 방어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제7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항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상급부대의 명에 의거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5군단이 원주 지역에 깊숙한 돌파구를 형성함에 따라 연대는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동북방의 봉래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제7사단은 제3사단 제23연대를 배속받아 영월 탈환작전에 나섰다. 사단의 영월 탈환작전은 1951년 1월 19일 제3연대와 제8연대가 각각 주공과 조공으로 만경대산과 연하리의 694고지를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제8연대는 연상리에서 공격을 시작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공격 첫날 694고지를 점령했다. 사단은 곧이어 만경대산 서쪽 6km 지점의 응봉산 탈환에 나섰고, 연대는 조공부대로 583고지를 점령한 후 응봉산을 점령한 제3연대와 연결했다. 사단은 1월 21일 영월에서 단양으로 흐르는 남한강까지 진격하여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했다. 이후 사단은 미 제7사단과 연합작전을 전개하여 영월 시가지 탈환작전을 벌여 이를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적이 물러남에 따라 1월 25일 사단은 공세로 전환하여 평창 북방으로 진출했고, 2월 초순까지 횡성 동북방의 창동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중공군은 횡성-원주 축선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2월 11일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개시했고, 돌파구 측방의 창동리에 배치되었던 사단은 측방이 노출되면서 20km 정도 후방으로 철수했으나, 적은 틈을 주지 않고 추격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2월 16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보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41면-2248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1-ㄱ-09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