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복(이영복)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8102669
- 전몰일자 : 19500903
공훈사항
이영복 일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6·25전쟁이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의 공격에 밀려 낙동강 선까지 지연전을 펼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1950년 8월 1일 제3사단 제23연대에 입대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유엔군은 8월 1일부로 낙동강방어선을 편성하여 북한군의 8월 공세를 저지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영덕 북방 고지군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북한군 제2군단은 8월 공세의 주공을 대구로 지향하는 한편, 제5사단을 조공으로 동해안 축선에 투입하여 포항을 점령한 후, 경주-울산-부산 축선으로 진격하려 했다. 제3사단은 영덕을 사이에 두고 적과 백병전이 거듭되는 공방전을 펼친 끝에 8월 2일 마침내 영덕을 탈환 후, 3일 활인산-매정동 선을 확보했다. 하지만 8월 5일 적의 야습을 받아 영덕을 탈취당했고, 연대는 오포동-오십천 하구 남방을 잇는 선상에서 적과 대치했다.
8월 10일 흥해 남쪽 3.8km 지점의 냉천동 일대에 출현한 북한군 제12사단의 1개 연대가 8월 11일 포항을 점령함으로써 퇴로가 차단된 제3사단은 구계동-월포동 일대에 고립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5사단은 제3사단이 고립된 것을 알고 강력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강구를 점령한 적은 유엔 해·공군의 강력한 화력을 피해 동해안 도로 대신 해안선 야산지대를 따라 침투했고, 사단은 장사동 일대에서 8월 16일까지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8월 16일 야간과 17일 아침에 사단 병력은 4척의 LST에 탑승하여, 구룡포에 상륙함으로써 성공적으로 해상 철수를 완료했다.
8월 18일 도구동으로 이동한 제3사단은 병력을 보충받아 전력을 강화하는 한편, 도음산에 배치되어 있던 제26연대를 배속받아 3개 연대 편성의 사단이 되었다. 8월 20일 새벽 제23연대는 공격을 개시하여 포항 북방의 우현동 일대까지 진출한 후, 23일 방어로 전환했다. 9월 1일 제3사단은 일제히 반격을 했고, 북한군 제5사단도 9월 2일 포항과 영일 비행장을 목표로 총공격(9월 공세)을 개시했다. 적의 강력한 공격에 맞서 연대 장병들은 주저항선인 93고지 일대에서 16회의 공방전을 거듭했다. 연대는 두호동-환호동 선으로 철수하여 이곳에서 9월 4일까지 적과 뺏고 뺏기는 혈전을 거듭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신병이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9월 3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복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1면-2256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2-ㄲ-06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