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복(李永福)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3500223
- 전몰일자 : 19501001
공훈사항
이영복 하사는 서울시 성북구 돈암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49년 2월 15일 제3여단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동년 6월 20일 제23연대가 창설되면서 동 연대로 전속되었다. 이 하사는 1950년 3월까지 이들 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연대는 6월 29일 울진지역에 투입되었다. 연대는 7월 19일부터 8월 중순까지 영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공방전을 펼치면서 적의 공격을 지연했다. 8월 11일 북한군 제12사단 일부 병력이 포항을 점령함에 따라 사단의 후방이 차단되어 고립되자, 사단은 8월 17일 장사동에서 해상철수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병력을 재보충받은 연대는 8월 20일 공격을 개시하여 포항 북방의 우현동 일대까지 진출한 후, 23일 방어로 전환했다. 9월 1일 제3사단은 일제히 반격을 했고, 북한군 제5사단도 9월 2일 포항과 영일 비행장을 목표로 총공격(9월 공세)을 개시했다. 적의 강력한 공격에 맞서 연대 장병들은 주저항선인 93고지 일대에서 16회의 공방전을 거듭했다. 연대는 두호동-환호동 선으로 철수하여 이곳에서 9월 4일까지 적과 뺏고 뺏기는 혈전을 거듭했다. 5일 새벽 적은 최후 공격을 감행했고, 연대는 완강히 저항했으나 결국 방어선이 붕괴되어 형산강 변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연일을 탈환한 후 총반격 태세에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이때 적 제5사단도 쉽게 물러나지 않고 강력하게 저항했다. 연대는 해·공군의 폭격 지원하에 치열한 전투 끝에 사단 선두로 18일 도하작전에 성공했고, 여세를 몰아 9월 22일 흥해까지 진격했다.
유엔군은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연대는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영덕, 울진, 삼척을 차례로 탈환하고, 30일에는 강릉을 탈환했다. 연대는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 가도를 따라 진격했다. 이 진격전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진하다 10월 1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복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면-17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5-ㅅ-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