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복(李永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86048
- 전몰일자 : 19510327
공훈사항
이영복 일병은 1925년 1월 21일에 경기도 화성군 마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38선으로 철수했던 1950년 12월 초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8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수색대는 항상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사단에 보고하거나, 직접 적 지휘소 또는 보급소를 습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영복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1월 5일, 제8사단은 홍천 남쪽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의 대공세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가 부대로 배치되기 직전,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에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개시하여 38선을 돌파했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1951년 1월 1일 야간에 38선 일대의 방어진지에서 일제히 철수했고, 제8사단은 국군 제3군단에 배속되어 화천저수지 남쪽의 경운산-추전리를 잇는 방어선을 점령하고 있었으나 적의 공격 강도가 미약하였으나, 좌우 인접부대가 철수하면서 고립될 상황에 직면하여 홍천으로 철수했다. 그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에서 주로 적 지휘소 및 보급소를 습격하여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얼마 후 제8사단은 미 제10군단의 라운드업 작전의 일환으로 홍천을 포위하기 위해 2월 5일에 공격을 개시하였고, 2월 10일에는 홍천 남쪽의 오음산을 탈취하기 위하여 보병, 전차, 포병의 협조된 공격을 펼쳤으나 실패했다. 이어 중공군은 2월 11일 야간에 4차 공세(일명 2월 공세)를 시작했다. 당시 중공군 제198사단은 제10연대와 제21연대 사이의 8km이르는 넓은 공간을 뚫고 후방으로 기동하여 교량을 파괴하고 도로를 봉쇄했다. 이에 제8사단은 2월 12일 새벽 5시에 이르자 모든 통신이 끊기고, 후방이 차단되었다. 이영복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에 침투하여 후방교란작전을 실시하던 중, 적 부대의 공격을 받았으나 치열한 전투로 격퇴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3월 27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복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61-ㄲ-09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