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복(이영복)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16909
  • 전몰일자 : 19501227

공훈사항

이영복 중위는 1930년 3월 16일 출생했다(출생지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호국간성이 되고자 1949년 7월 15일 육군사관학교 생도 1기(육사 제10기)로 입교했다. 이 중위가 1년 동안의 군사훈련을 과정을 수료한 후 임관을 앞두고 있을 때인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본부 명에 의거 육사 1기생 전원과 2기생 중 277명 등 539명은 생도대대에 편성되어 6월 25일 내촌 일대에서 북한군과 교전한 후, 28일에는 서울 동북쪽 불암산과 육사를 잇는 방어선에서 적의 남진을 막고자 항전했다. 하지만 이 중위는 이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이 중위는 7월 10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국군과 유엔군은 반격작전으로 전환했고,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10월 10일 원산을, 19일 평양을 점령하고 계속 북진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황 속에서 제9사단이 10월 25일 제28·29·30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서울에서 창설되었다. 이 무렵 이 중위는 부상에서 회복되어 사단 병참중대에 편입되었다.
한편,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북한군 패잔병과 지역 공산주의자들이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방지역작전을 하던 미 제9군단과 예하 미 제2·25사단이 청천강 선으로 투입됨에 따라 10월 15일 창설된 국군 제3군단이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9사단은 동 군단에 배속되어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북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사단은 11월 23일 충남 대전에 ‘호서 대둔산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공비소탕작전에 돌입했다. 병참중대는 사단사령부와 함께 위치하면서 부대 인근지역에 출몰한 게릴라를 소탕하고, 예하부대에 대한 급식 및 보급 임무를 수행했다. 이 작전에서 사단은 게릴라 2,125명을 사살하고 259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사단은 12월 19일부로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하여 북한군 유격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12월 27일 이 중위가 소속된 병참소대는 예하 연대에 보급추진을 하다가 적의 습격을 받았다. 이때 이 중위는 소대원을 이끌고 솔선수범 앞장서서 적과 싸우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복 중위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7054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20-ㄴ-06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