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부(李泳富)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801298
- 전몰일자 : 19510131
공훈사항
이영부 일병은 1928년 2월 3일 강원고 홍천군에서 출생했다. 그는 광복 후 조국을 지키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자, 1947년 3월 22일 춘천에 있는 제8연대에 입대했다.
제8연대는 1950년 6월 20일 서울로 이동하여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되었고, 이동한 지 이틀 만에 전쟁을 맞았다. 연대는 김포, 영등포 일대에서 적과 싸웠고, 진천-미호천-보은-안동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다 전투력의 소진으로 7월 23일 해체되었다. 8월 20일 연대는 제7사단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어 신녕지구 전투와 영천전투에서 적의 돌파를 저지하고 영천을 탈환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최대 위기를 극복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유엔군은 9월 16일부로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문경-충주를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한 후, 김화-평강-율리를 거쳐 18일 승호리 일대에서 대동강을 건너 김일성대학과 모란봉 일대로 진격했다. 연대는 20일 북한군 제17, 제32사단의 잔적을 소탕함으로써 제1사단과 더불어 최초로 평양을 점령한 부대가 되었다.
10월 29일 북진을 계속한 연대는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 일대를 점령하여 방어태세에 들어갔다. 연대는 중공군 제112사단의 공격을 맞이하여 7일까지 적과 고지를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비호산을 지켜냄으로써 청천강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최초로 승리했다. 11월 14일 연대는 덕천으로 진격했고,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연대는 26일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 제38군과 제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사단은 미 제8군 철수계획에 따라 승호리-신계-시변리-춘천으로 축차적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항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1951년 1월 중순경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연대는 공격을 개시하여 만경대산, 785고지, 계족산을 차례로 점령하고 적의 퇴로를 차단한 후, 24일 영월을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적이 물러남에 따라 1월 25일 사단은 공세로 전환하여 평창 북방으로 진출했다. 이 공격전에서 이 일병은 앞장서서 용감하게 전진하다 1월 31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부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0판-5면-07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5-ㅎ-02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