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산(李永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010
  • 전몰일자 : 19520601

공훈사항

이영산 일병은 전라북도 옥구군 미신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1월 9일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 직할 제25연대에 배치되었다(*25연대는 8월 16일 해체되어 제26연대에 편입되었다.).
이영산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을 돌파한 후 2차 총공세로 압록강을 향해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기습으로 후방이 차단되어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제26연대는 1951년 2월부터 4월까지 삼척-강릉-속사리-남가리-설악산 일대까지 진격하면서 강릉 지구전투와 오대산전투를 실시하였다. 이어 양양전투를 수행한 이영산 일병과 장병들은 5월 7일부터 13일까지 설악산지구전투와 5월 18일부터 25일까지 대관령 방어 작전 등으로 북한군의 춘계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설악산과 가리봉과 972고지를 근접전투와 치열한 백병전을 펼쳐 어렵게 972고지를 점령하는 전공을 세웠다.
중공군의 제6차 공세가 시작되자, 설악산 부근의 사단 주저항선이 돌파되면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영산 일병과 연대병력은 5월 29일 간성 서북쪽 504고지를 공격해 점령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연대는 8월 18일 북한군이 점령한 924고지를 공격하였다. 이때 그와 장병들은 고지 8부 능선일대에서 적진으로 돌입해 고지를 점령했으나 20일 다시 북한군의 역습으로 탈취당하였다.
제26연대는 1952년 1월 4일부터 지리산과 백운산 일대에서 공비들을 소탕하였으며, 3월 17일 화천으로 이동해 금성천 북안의 미주리 선에 배치되었다. 이어 4월 5일부로 제2군단으로 배속되어 동부전선을 방어 중이었다. 4월 20일 진지 전방으로 정찰활동을 수행하던 그는 북한군과의 교전에서 중공군을 여러 명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싸우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최선봉에서 용맹스럽게 전투에 임했던 이영산 일병은 1952년 6월 1일 소성리 부근전투에서 매복해 있던 적의 습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1판-4면-16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7-ㄲ-07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